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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전쟁 영화인데 적군이 없습니다. 전투도 없고, 영웅의 활약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전쟁 영화에서 기대하는 장면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의 정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아챘습니다.

뺄셈의 미학 — 없애서 완성한 영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덩케르크》를 만들면서 대부분의 전쟁 영화가 필수로 갖추는 요소들을 하나씩 걷어냈습니다. 적군의 얼굴이 없고, 인물들의 전사(前史)가 없으며, 치열한 전투 장면도 없습니다. 여기서 전사란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배경 서사를 의미합니다. 보통 전쟁 영화라면 "고향에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다"거나 "병든 어머니가 있다"는 식으로 주인공이 살아 돌아가야 할 이유를 미리 심어둡니다.
《덩케르크》는 그걸 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토미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남기고 왔는지 영화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특히 인상 깊게 본 이유는, 이 선택이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명확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사가 없으면 관객은 특정 인물에게만 감정 이입할 수 없습니다. 결국 화면 속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독일군을 재난(disaster)처럼 묘사한 방식도 같은 맥락입니다. 재난이란 누군가를 골라서 공격하지 않습니다. 폭격은 그냥 쏟아지고, 총알은 방향 없이 날아옵니다. 영화 내내 독일군의 얼굴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포로가 된 파일럿을 체포하는 실루엣만 희미하게 비칩니다. 이 선택 하나가 영화 전체의 결을 바꿔놓습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재난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뺄셈의 용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압니다. 직장에서 보고서를 쓸 때도, 글을 쓸 때도 뭔가를 더 채우려는 충동이 먼저 옵니다. 그런데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를 덜어낼 수 있을 때 오히려 읽는 사람의 마음에 더 오래 남더라고요. 놀란은 블록버스터 스케일에서 그 원리를 실현했습니다.
익명의 영웅 — 이름 없는 자들의 이야기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챘습니다. 주인공인 토미와 알렉스의 이름을 영화가 한 번도 직접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야 "아, 핀 화이트헤드가 맡은 캐릭터가 토미였구나"를 알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던 겁니다.
반면 구조자들 — 민간인 선장 미스터 도슨, 그의 아들 피터, 젊은 조지, 해군 제독 볼튼, 파일럿 파리어와 콜린스 — 의 이름은 영화 안에서 분명히 불립니다. 구조받는 쪽은 익명이고, 구조하는 쪽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 구조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영화가 살려내고 싶은 것은 특정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생명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인물이 프랑스 병사 깁슨입니다. 깁슨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의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전사한 영국 병사의 명찰을 떼어 붙인 이름이죠. 여기서 명찰(dog tag)이란 전쟁 중 병사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목에 거는 금속 인식표를 말합니다. 영화 내내 깁슨이라 불리는 이 프랑스 병사는 끝까지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죽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이름조차 없이 쓰러진 수많은 무명용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저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유일하게 신문 기사로 기록하는 영웅은 볼튼도, 도슨도, 파리어도 아닙니다. 17살 소년 조지입니다. 직접 한 일이 거의 없고, 우연히 사고를 당해 숨진 아이가 영웅으로 기록됩니다. 가족이 아팠을 때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꼈던 나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조지의 죽음 앞에서 비슷한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시간 구조 — 세 겹으로 흐르는 긴박감
《덩케르크》가 구사하는 가장 독특한 형식은 세 개의 시간대가 동시에 흐른다는 점입니다. 육지에서는 일주일, 바다에서는 하루, 하늘에서는 한 시간. 이 세 시간은 서로 다른 밀도로 압축되어 영화 러닝타임 안에 뒤섞입니다. 이런 구성 방식을 영화 용어로 비선형 내러티브(non-linear narrative)라 부릅니다. 쉽게 말해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고, 다른 시간대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가 낳는 효과는 단순한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습니다. 육지의 병사들에게 시간은 너무 느립니다. 구조대가 오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반대로 하늘의 파일럿들에게 한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연료가 바닥나기 전에 임무를 마쳐야 하니까요. 같은 작전 안에서 누군가는 시간이 너무 길어 괴롭고, 누군가는 너무 짧아 조급합니다. 그 온도 차이가 영화 내내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이 구조에서 가장 감탄한 장면은 파일럿 콜린스가 격추되어 바다에 빠지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은 두 개의 시점으로 교차 편집됩니다. 하늘에서 보는 시점과 바다에서 보는 시점. 이 순간이 세 개의 시간대가 처음 만나는 결절점(node)입니다. 결절점이란 서로 다른 서사 흐름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콜린스는 구조자에서 피구조자로 역할이 바뀝니다. 누군가를 구하러 갔던 사람이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 역할의 전환이 영화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구조자와 피구조자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이 비선형 시간 구조는 놀란이 《인셉션》에서 먼저 실험한 방식을 사실적인 전쟁 서사에 이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IMDb — Dunkirk (2017)에 따르면 영화는 실제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진행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하며, 그 9일간의 작전에서 33만 명 이상이 구출되었습니다.
연대의 가치 — 우연과 협력으로 살아남기,, 결론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토미는 왜 살아남았을까? 정답은 단순합니다. 운입니다. 모래사장에 엎드렸을 때 폭탄이 한 발만 더 앞에 떨어졌다면 죽었을 겁니다. 여섯 명이 골목을 달릴 때 다섯이 총에 맞고 그만 살아남은 것도 우연입니다. 제로섬(zero-sum) 게임적 사고를 하는 인물들이 그를 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은 건 특별한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이 이기면 반드시 다른 쪽이 져야 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영화 속 알렉스가 깁슨을 배 밖으로 내몰려는 장면이 정확히 이 논리입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이 논리에 빠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도 비슷한 충동을 느낀 적 있습니다. 책임을 혼자 떠안으려 하거나, 반대로 남에게 넘기고 싶은 마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정작 그 상황을 풀어준 건 동료가 조용히 옆에 앉아 같이 문제를 정리해 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미스터 도슨이 아무런 군사적 의무도 없으면서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는 장면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민간인 선장이 민간 선박을 이끌고 교전 수역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국제 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관점에서도 이례적입니다. 국제 인도법이란 전쟁 중 민간인 보호와 전투 방식을 규율하는 국제법 체계입니다. 출처: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따르면 민간인의 자발적 구조 행위는 무력 충돌 상황에서 특별한 윤리적 의미를 갖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토미가 기차 안에서 신문에 실린 처칠의 연설을 소리 내어 읽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순간 이름 없는 병사가 전쟁 영웅의 목소리를 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마지막 장면은 오래 남습니다. 특별히 잘난 것 없이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 영화는 그 역설을 조용하게 보여주고 끝납니다.
요약: 토미의 생존은 영웅적 능력이 아닌 우연과 타인의 도움 덕분이며, 영화는 제로섬적 이기심보다 연대의 선택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가 갖춰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거의 다 걷어낸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 아니, 바로 그래서 —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전쟁 영화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거창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요식업을 할 때 단체주문으로 절절매며 긴장의 연속일 때 동료의 손 하나에 무너지듯 안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살아남는 일이 혼자의 능력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을 이 영화가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뺄셈의 미학, 익명의 영웅, 비선형 시간 구조 — 이 세 가지가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합니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살아 돌아갈 이유가 있다." 이게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이고, 놀란은 그 단순한 문장을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로는 게리 올드만이 처칠을 연기한 《다키스트 아워》를 추천합니다. 덩케르크 작전이 진행되던 바로 그 시간, 런던 수뇌부에서는 어떤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참고: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덩케르크 해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