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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영양사로 일하던 직장 생활 초반에 제가 만든 특식메뉴 보고서를 자신의 성과인 것처럼 포장한 동료때문에 오랫동안 분노를 삭이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감정을 꺼낸 채로 영화 《벤허》를 봤는데, 스크린 속 벤허의 이야기가 남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880년 남북전쟁의 영웅 루 월리스 장군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1907년 무성 영화를 시작으로 2016년까지 총 네 번 리메이크된 고전 중의 고전. 그 완결판이 과연 복수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배신의 시작 — 형제보다 진했던 우정이 어떻게 무너졌을까
혹시 오래 알아온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그 사람이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잘 알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 아팠으니까요.
유다 벤허와 메살라의 관계가 바로 그렇습니다. 로마 제국 치하의 예루살렘, 유대 귀족 가문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혈육 이상의 유대를 나눈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벤허의 어머니가 메살라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가운데, 메살라는 결국 로마 군인의 길을 택하고 집을 떠납니다. 3년 뒤 사령관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메살라는 벤허에게 로마 협력을 요구하고, 벤허가 이를 거절하자 친구를 반역자로 몰아버립니다.
여기서 이 영화의 비극 구조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드라마투르기(dramaturgy), 즉 극적 긴장감을 구성하는 서사 기법 측면에서 보면, 벤허와 메살라의 갈등은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신념과 처지 안에서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충돌하면서 비극이 만들어졌습니다. 쉽게 말해, 누가 완전한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국이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던 것은, 메살라가 단순한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배신의 이유가 권력욕만은 아니었고,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된 두 사람의 간극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씁쓸했습니다.
복수심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 — 5년의 노예 생활과 그 무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노예로 끌려간다면, 그 분노를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저도 직장에서 부당한 상황을 겪었을 때 '언젠가는 반드시 되갚아 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감정이 힘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를 소진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벤허는 반역죄로 노예가 되어 갤리선(galley ship), 즉 수십 명의 노예가 노를 저어 움직이는 전투용 군함의 노 젓는 칸에 갇힙니다. 갤리선이란 고대 지중해 전쟁에서 핵심 전력으로 쓰인 선박으로, 노예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생사의 경계에서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공간에서 벤허를 지탱한 것은 메살라에 대한 복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 쓰러진 벤허에게 물 한 모금을 건네는 예수. 그리고 훗날 아프리카 상인 일데림이 벤허를 구하고 전차 경주의 길을 열어줍니다. 제가 보기에 이 두 인물은 각각 '용서'와 '기회'라는 주제를 상징하는 장치로 읽혔습니다.
복수심이 인간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에너지는 결국 자신도 태웁니다. 벤허의 5년이 그것을 보여주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전차경주의 진짜 의미 —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전차 경주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단순히 영상이 화려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 두 사람이 쌓아온 이야기를 알기 때문에 그 트랙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단순한 레이스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촬영 방식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면, 이번 2016년판 벤허는 액션 카메라인 고프로(GoPro)를 전차와 말에 직접 부착해 촬영했습니다. 고프로란 익스트림 스포츠나 액션 현장에 특화된 소형 방수 카메라로, 피사체 바로 곁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기존 촬영 장비로는 담기 어려운 생생한 현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이 기법 덕분에 관객은 전차 위에 탄 것처럼 흙먼지와 말발굽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장면에서 진짜 눈길이 간 것은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란히 출발선에 선 벤허와 메살라의 얼굴이었습니다. 형제처럼 지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같은 트랙 위에 선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비극이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트로이》처럼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오랫동안 관객을 끌어온 이유는 스펙터클 때문만이 아닐 것입니다. 미지의 시대가 가진 서사적 무게감이 거기에 있습니다.
1959년판 벤허로 아카데미 시상식 11개 부문을 석권했던 명성(출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과 비교할 때, 2016년판은 시각적 완성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도 영상 밀도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 — 예수의 등장과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
영화가 끝나고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전차 경주의 흥분이 아니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벤허의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얼굴에서 거부감과 흔들림이 동시에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판 《벤허》가 이전 작품들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예수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것입니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신성함을 이유로 예수의 뒷모습이나 실루엣만 등장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가 예수를 직접 연기하며 대화하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는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이 선택이 용서라는 주제를 훨씬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게 했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을 여기서 떠올리게 됩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감정의 정화와 해방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벤허가 복수를 향해 달려가다가 결국 용서와 화해의 자리에 서는 과정이 바로 이 카타르시스를 구현합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용서란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반드시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벤허가 겪은 배신과 고통의 깊이를 생각하면,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이 다소 빠르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해자의 책임과 피해자의 고통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채 용서가 강조되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유효합니다. 복수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증오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진정한 승리는 과거의 상처에 지배당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는 것. 저도 오래전 직장에서의 그 일을 떠올리며, 결국 제가 앞으로 나아갔을 때 비로소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결론
영화 《벤허》를 보고 나서 제가 오래 생각한 것은 전차 경주의 스펙터클이 아니었습니다. 복수심으로 버텨온 사람이 그 감정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거기서 비로소 자기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분노를 오래 품고 있으면 상대방보다 내가 더 소진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벤허의 여정이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용서에 대한 이 영화의 답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책임을 더 정면으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증오에 사로잡혀 사는 것보다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승리라는 메시지는, 시대를 막론하고 울림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 배경의 웅장한 서사와 2016년의 기술력이 궁금하시다면, 1959년판과 함께 비교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hashtag/%EB%B2%A4%ED%97%88%EB%A6%AC%EB%B7%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