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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곁에 있는 것이 맞을까요. 《스파이더맨: 브랜뉴데이》를 보고 나서 제가 한참을 앉아 고민했던 것은 그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화려한 멀티버스 사건도, 새 빌런의 등장도 아니라 피터 파커라는 한 사람이 고립 속에서 무너져 가는 과정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중년의 나이에 이 영화로부터 건진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봅니다.

고립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 피터의 선택과 그 대가
영화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직후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피터 파커는 스콜피온, 툼스톤, 렘로드, 부메랑, 타란튜라, 핸드 같은 빌런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뉴욕의 범죄율을 80%나 낮춰 놓았죠. 스파이더맨으로서는 완벽한 4년이었습니다.
문제는 가면 뒤에 있었습니다. 피터 파커로서의 그는 새 직장도, 진학도 없이 오로지 히어로 활동에만 매달린 채 누구와도 진짜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메이 숙모의 죽음 이후 자신으로 인해 또 누군가가 다칠까 봐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것이죠.
이런 선택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압니다. 영화감상 동호회 모임에서 활동 방식 차이로 어떤 회원과 갈등이 생겼을 때, 저도 더 이상 상황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먼저 거리를 뒀습니다. 당시엔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해만 더 깊어져 있었습니다. 피터의 고립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던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고립의 대가를 DNA 변이라는 설정으로 시각화합니다. DNA 변이란 외부 스트레스와 자극 결핍이 쌓이면서 피터의 유전자 안에서 거미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감각 수용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손목에서는 웹슈터 없이도 생체 거미줄이 분출되기 시작하죠. 이것은 단순한 SF 설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피터가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서사 장치입니다. 인간은 고립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는다는 메시지를 이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피터의 고립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DNA 변이는 고립에 의한 인간성 붕괴를 생물학적 언어로 번역한 장치입니다
브루스 배너(헐크)의 조언 — "좋고 나쁜 DNA를 누가 결정하는가" — 은 이 문제의 핵심을 찌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고립은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붕괴의 시작이며, 영화는 이를 피터의 신체 변화로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정체성의 충돌 — 피터 파커인가, 스파이더맨인가
이번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장면은 진 그레이가 피터에게 던진 한마디였습니다. "너는 피터 파커인가, 아니면 스파이더맨인가." 이 질문은 영화 전체가 피터에게 끊임없이 던져온 물음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었습니다.
진 그레이는 텔레파시(telepathy)와 염동력(telekinesis)을 사용하는 뮤턴트입니다. 텔레파시란 물리적 접촉 없이 타인의 정신에 직접 개입하거나 조종하는 능력이고, 염동력이란 생각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쉽게 말해 진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의 안과 밖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존재죠. 그녀가 MCU에 등장한다는 것은 곧 뮤턴트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뮤턴트(mutant)란 태어날 때부터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존재로, 후천적으로 능력을 얻은 피터나 배너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X맨 세계관의 정체성 그 자체인 셈입니다. 이번 영화의 진 그레이는 과거 폭스 X맨 시리즈와 단절된 완전히 새로운 MCU 기원의 캐릭터로, 배우 세이 싱크가 연기했습니다(출처: Marvel 공식).
진이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피터와 가장 닮은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특별하다는 이유로 상실을 겪었고, 그 상처를 혼자 짊어지려 했습니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충돌을 통해 괴물의 기준을 외형이나 능력이 아닌 행동과 윤리성으로 재정의합니다.
피터가 결국 목 뒤의 DNA 억제기를 스스로 떼어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DNA 억제기란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강제로 차단하는 장치로, 배너가 헐크를 다스리기 위해 사용하던 것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피터는 그것을 제거하면서 거미의 본능을 억누르는 대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둘 다 자신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진 그레이와의 충돌은 피터가 자신의 두 정체성을 하나로 통합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며, 뮤턴트의 MCU 등장은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알립니다.
새로운 시작 — 브랜뉴데이가 진짜 뜻하는 것
브랜드 뉴 데이(Brand New Day)는 원래 2008년 마블 코믹스에서 시작된 스토리라인의 제목입니다. 당시 피터는 메이 숙모를 살리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와 거래를 맺고, 그 대가로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과 메리 제인과의 결혼까지 지워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은 뒤 다시 시작하는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죠. 이번 영화는 코믹스의 세부 스토리를 그대로 옮기진 않았지만 핵심 콘셉트 — 상실 이후의 재출발 — 은 정확하게 가져왔습니다(출처: Marvel Comics 공식 아카이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흔히 과거를 지우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 영화는 그 반대를 말합니다. 피터는 메이 숙모의 죽음도, MJ와 네드에 대한 그리움도, 스스로 관계를 끊어버렸던 4년도 지우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전부 자신의 일부로 안고서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퍼니셔 프랭크 캐슬이 피터에게 던진 일침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가족을 잃고 복수를 마친 뒤에도 행복을 되찾지 못한 프랭크는 피터에게 말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가족을 볼 수 있다면 겁쟁이처럼 마스크 끝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요. 이 대사는 고독을 선택한 피터에게,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 했던 저 자신에게도 정확히 박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상처를 숨기고 혼자 버티는 것이 성숙한 태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제가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때로는 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피터가 마지막에 가면을 벗고 피터라고 네드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용기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브랜뉴데이는 과거를 지우는 리셋이 아니라 상실과 후회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다시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뉴데이》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솔직한 영화였습니다. 화려한 멀티버스 이벤트 대신 한 사람이 자신의 상실을 어떻게 껴안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봅니다. 피터가 억제기를 떼어내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혼자 버티는 것이 강함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상처를 지우려 하지 말고 그것까지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 영화가 끝난 뒤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아직 피터의 이야기가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일단 이번 영화를 먼저 보고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hashtag/%EB%B8%8C%EB%9E%9C%EB%93%9C%EB%89%B4%EB%8D%B0%EC%9D%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