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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증언, 역사 기억, 침묵의 대가)

infobox43689 2026. 10. 12. 11:43

목차


    영화를 감상하고 든 감정이 슬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직접 법정에 서서 몸에 새겨진 흉터를 보여주며 "내가 바로 증거"라고 말하는 장면 앞에서, 저는 과거에 부당한 일을 겪고도 그냥 묻어버렸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 질문을 붙들고 쓴 기록입니다.

     

    아이캔스피크포스터

    위안부 증언이 지금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예전에 위탁급식업체에서 일할 때 급식소 거래를 성사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성사된 거래를 윗사람이 본인 실적으로 만들었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지만 평화롭게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항변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침묵이 현명한 선택처럼 느껴졌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다시 확인했습니다.

    영화 속 나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강제 동원된 여성들을 가리킵니다. 나분 할머니는 13살에 끌려갔고, 60년 넘게 그 사진을 간직하면서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잊으면 내가 지는 거니까"라는 대사 한 마디가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피해자의 증언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말한 내용이 다른 사람의 해석을 거치면서 달라진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그 경험이 사실이라는 점까지 다시 입증해야 합니다. 이 장면은 역사적 기록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기록을 누가 작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미국 하원은 2007년 7월 30일 결의안 H.Res.121을 채택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결의안은 미국 하원의 입장을 밝힌 결의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을 실제 역사적 인물의 생애와 그대로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영화는 역사적 문제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허구의 인물과 극적 상황을 활용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과거를 얼마나 오래 기억해야 하는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의 증언을 신뢰할 것인지, 불편한 역사를 어떤 근거로 이해할 것인지, 그리고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역사적 기억은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반복해서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료를 확인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으려는 과정입니다.
    참고 자료: 미국 정부 공식 자료의 H.Res.121 설명

     

    일각에서는 이미 수십 년이 흐른 일을 왜 계속 꺼내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침묵이 오래될수록 왜곡이 더 깊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속 정심 할머니의 증언이 통역 과정에서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된 장면, "쌀밥이 먹고 싶어서 위안소로 들어갔다"는 말로 둔갑한 그 장면은 제가 본 중 가장 분노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역사 기억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역사 기억(historical memory)이란 특정 사건을 개인이나 집단이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단순히 사실을 기록해 두는 것과는 다릅니다. 쉽게 말해, 어떤 사건이 '있었다'라고 아는 것과 그 사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실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일상에서 부당한 일을 목격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주변에서 누군가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설명만으로 상황을 판단한다면 당사자의 입장은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갈등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침묵하는 선택이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그 침묵이 잘못된 상황을 바꾸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즉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는 보복이나 불이익을 두려워할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침묵을 선택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증언을 들은 사회가 그 내용을 공정하게 검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영화는 나옥분의 용기를 통해 개인의 행동이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용기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만 사회가 움직이는 구조라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은 계속해서 가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메시지는 피해자가 용기를 내야 한다는 요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먼저 듣고, 확인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국 여성가족부와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 신고자는 총 240명이었고 이 중 상당수가 고령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이 숫자가 줄어들수록, 직접적인 역사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지금 나왔다는 사실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나분 할머니가 나이 든 몸으로 영어를 배운 이유가 처음엔 미국에 있는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진짜 이유가 드러납니다. 정심 할머니의 증언이 외국에서 통역 오류로 왜곡되는 것을 목격한 뒤, 직접 전달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은, 그 결심이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대가를 뒤늦게 계산하면

     

    피해자가 용감하게 나서는 이야기로만 이 영화를 읽으면 중요한 질문이 빠집니다. 왜 피해자가 80대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증거가 되어야 하는가. 왜 생존자들이 법정에서 흉터를 직접 보여줘야만 믿어주는가. 그 불합리한 구조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으면 감동으로만 끝날 수 있습니다.

    저도 과거에 부당한 일을 겪은 뒤 "지금 말해봤자 누가 믿겠어"라는 생각에 침묵을 선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침묵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상황을 그대로 둔 공범이 된 것과 비슷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불편한 감각을 직접적으로 건드렸습니다.

     

    전쟁범죄(war crime)란 국제 인도법을 위반하는 무력 충돌 행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쟁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은 시효가 없다는 국제법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지는 역설이 생깁니다. 침묵이 쌓이면 그 침묵 자체가 면죄부처럼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을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감동 소재로만 소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그 우려 자체는 타당하다고 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눈물을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붙잡는 방식으로 그 함정을 피해 간다고 느꼈습니다. 나분 할머니가 공청회에서 흉터를 보여주며 "증거가 없다고요? 내가 바로 증거"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감동이 아니라 항의였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이 영화가 제게 남긴 것은 감동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침묵을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지켰다고 여겼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침묵이 사실은 잘못된 상황을 승인하는 쪽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나분 할머니가 80대에 영어를 배워 공청회 단상에 서는 모습은, 그 용기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고 슬퍼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억하고,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때 목소리를 내고,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가 이어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hashtag/%EC%9D%B4%EC%A0%9C%ED%9B%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