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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블리지 (공권력 부패, 부당함, 제도적 정의)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해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 《레블리지》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자전거를 타고 평범하게 이동하던 남자가 부패한 경찰들에게 삥을 뜯기고, 사촌을 구하려 합법적인 절차를 밟을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전 억울했던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게 꽤 불편할 만큼요. 공권력 남용, 절차가 막혔을 때 남는 건 영화 속 주인공 테리는 처음부터 싸우러 간 사람이 아닙니다. 갱단 사건의 핵심 증인이 된 사촌 동생이 시립 교도소로 이송되면 갱단의 보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전에 보석(bail)으로 꺼내려 했을 뿐입니다. 보석이란 재판 전 피의자가 일정 금액을 법..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9. 21:17
덩케르크 (뺄셈미학, 익명의영웅, 시간구조)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인데 적군이 없습니다. 전투도 없고, 영웅의 활약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전쟁 영화에서 기대하는 장면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의 정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아챘습니다. 뺄셈의 미학 — 없애서 완성한 영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덩케르크》를 만들면서 대부분의 전쟁 영화가 필수로 갖추는 요소들을 하나씩 걷어냈습니다. 적군의 얼굴이 없고, 인물들의 전사(前史)가 없으며, 치열한 전투 장면도 없습니다. 여기서 전사란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배경 서사를 의미합니다. 보통 전쟁 영화라면 "고향에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다"거나 "병든 어머니가 있다"는 식..

카테고리 없음 2026. 10. 11. 13:54
버드 박스 (시각 공포, 모성 성장, 미지의존재)

"눈을 가리면 살 수 있다"는 설정이 너무 단순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버드 박스》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담은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던 한 여자가 재난 속에서 두 아이를 목숨 걸고 지키는 엄마로 바뀌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시각 차단이 만드는 공포 — 익숙한 것이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 밤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 집 안이 완전히 어두워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눈 감고도 걸어 다니던 제 집인데, 그 순간만큼은 손으로 벽을 더듬으면서 겨우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물건 하나에 발이 걸려도 심장이 쿵 내려앉고, 휴대전화 불빛을..

카테고리 없음 2026. 9. 28.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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