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야기를 기대하고 보았지만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났습니다. 《퍼스트 맨》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지만, 정작 영화 내내 그가 왜 달에 가고 싶어 하는지 한 번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고 이 영화를 다시 곱씹으니, 그 침묵이 오히려 더 깊이 박혔습니다.달 착륙 영화인데, 왜 그렇게 조용한가 솔직히 처음 30분은 당황스러웠습니다. X-15 시험비행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폭발하듯 치솟는 음악도, 영웅을 부각하는 카메라 워크도 없었습니다. 16mm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흔들리는 화면 안에 닐 암스트롱이 있었고, 저는 그게 무슨 의도인지 한동안 가늠이 안 됐습니다. 여기서 16mm 촬영이란, 35mm 필름보다 화질이 낮고 입자감이 거친 포맷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오..
국내 누적 관객 1,0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아바타, 겨울왕국에 이어 세 번째로 인터스텔라였습니다. 인구 대비 흥행 수치로 따지면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높았다는 사실, 놀란 감독이 직접 감사 영상을 만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블랙홀이나 웜홀보다 쿠퍼가 딸의 영상 메시지를 보며 무너지는 장면에서 먼저 울었습니다. 과학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사람 냄새가 나는지, 그 의문이 결국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제작 비화: 소개팅에서 시작된 블록버스터 198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자의 소개로 영화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처음 만납니다. 연인이 되지 않고 친구로 남은 두 사람이 25년 뒤 진짜 과학을 담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보자는 약속을 지키며 인터스텔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도 무대에 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은 그 첫 장면부터 심장을 조였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시대극이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2차 대전 직후 남부 이탈리아의 굶주림, 그리고 아이를 기차에 태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선택이 생각보다 훨씬 깊게 남았기 때문입니다.전쟁 직후 이탈리아, '행복의 열차'가 생긴 이유 영화의 배경은 1944년 전후의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입니다. 포탄이 쏟아지던 혼란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어머니 안토니에타는 일곱 살 아메리고와 단둘이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거리를 버텨냅니다. 제가 이 도입부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정도 가난이면 선택지 자체가 없었겠구나"였습니다.영화에 등장하는 '..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화 《블랙 백》은 국가 최고 등급 기밀 정보가 담긴 가방이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조지는 동료들을 추적하다 결국 아내 캐슬린마저 용의 선상에 올려야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직장에서 동료를 의심해야 했던 그날 밤이 떠올랐고, 꽤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신뢰란 의심하지 않는 것일까 — 블랙 백의 출발점 일반적으로 신뢰란 상대방을 의심하지 않는 상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연루된 순간에도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게 오히려 진짜 신뢰에 가깝더라고요.영화는 런던의 정보국 요원 조지가 은퇴한 비밀작전 담당자 미첨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국가 ..
디즈니 실사화 영화 중 원작 애니메이션과 장면 구성을 프레임 단위로 동일하게 재현한 작품은 극히 드뭅니다. 모아나 실사판은 그 드문 사례에 해당합니다. 극장에서 보고 나왔을 때 제가 처음 한 생각은 "재밌었는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였습니다. 그 묘한 간극을 분석해 봤습니다.캐스팅이 영리했던 이유, 그리고 한계 이번 실사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캐스팅 전략이었습니다. 모아나 역의 신인 배우는 원작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가진 당참과 에너지를 실제 사람의 몸으로 꽤 설득력 있게 구현해 냈습니다. 마우이 역의 드웨인 존슨은 사실상 자기 자신을 연기한 것에 가깝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마우이가 그의 목소리와 체형을 기반으로 설계된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이걸 두고 퍼포먼스 캡처(Performance Cap..
20년 만에 해체된 3인조 그룹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설정,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그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와일드 씽〉을 끝까지 보고 나서 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단순한 복귀극이 아니라, 과거에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그 감정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다시 함께 서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떤 장면에서는 웃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괜히 멍해졌습니다.트라이앵글 재결합 영화 속 트라이앵글은 댄스 머신(DM) 황현우, 래퍼 고상구, 보컬 도미로 구성된 혼성 3인조입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다소 어색한 조합이지만, 극 중 설정상 한때 차트를 휩쓸었던 팀입니다. 문제는 정산(수익 배분) 문제와 과거의 배신이 얽히면서 해체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
영화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감동적인 실화 영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단순히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왜 그들이 그토록 많은 것을 증명해야만 했는지를 계속 묻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NASA에서 일했던 흑인 여성 세 명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보면 볼수록 그 시대의 구조적 차별이 얼마나 촘촘했는지 실감이 납니다.차별 구조: 화장실 하나가 말해주는 것 영화 초반, 캐서린 존슨이 NASA 핵심 부서에 배치된 첫날부터 800미터 가까이 떨어진 화장실을 매번 왕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계산이 급한 날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화장실 문제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당신은 여기에 속하지..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조직에 들어간다는 설정이 그냥 훈훈한 세대 화합 이야기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인턴》은 그 예상을 조용하게 빗나갔습니다. 30년 경력의 실버 인턴 기호와 3년 만에 패션 스타트업 우투를 키워낸 대표 선우. 두 사람이 만나는 방식이, 제가 직장에서 경험한 세대 갈등의 기억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입니다.세대 차이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젊은 직원과 함께 일했을 때, 처음엔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업무 방식이 너무 달랐고, 메신저 축약어가 뭔지도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속으로 '내가 저 나이였을 때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을 꽤 오래 했습니다.그런데 영화 속 기호를 보면서 그 기억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기호는 패션 스타트업 우투에 실버 인턴, 즉 만 50세 이..
영화가 시작된 지 채 10분도 안 됐을 때 극장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단종과 한명회가 처음 마주치는 장면, 그 짧은 대사 몇 마디에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결말을 이미 알고 있어도 그 과정에 완전히 끌려들어 가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비극인데 왜 이렇게까지 가슴이 무거웠을까요. 관객을 백성으로 만든 명대사들 영화를 보고 나서 주변에 물어보면 꼭 이 질문이 나옵니다. "네 이놈 장면에서 더 소름이었어, 아니면 한명회 장면에서?" 저는 두 번 다 소름이었지만, 솔직히 두 번째 장면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첫 번째 "네 이놈"은 단종이 호랑이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외치는 장면입니다. 이때 극장 전체가 숨을 멈췄습니다. 왕이라는 지위를 잃은 뒤..